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만남은 가족간의 만남일것이다.
이번에 추석명절도 우리나라의 여러가족들의 만남이 있을테지만
가족간의 만남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요. 운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중함 때문에 가족들을 위해서는
모든것을 희생할수있으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버리는 경우도 있다.
며칠전 들은 이야기인데
감동있게 들어서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이같은 가족관계를 하루아침에 파기시키고
이산가족으로 만들어놓았고 50년이지난 오늘날까지도
그가족들에게 가슴아픈 상처를 남겨놓고 있다.
1951년 한국전쟁으로 평양에서 부산으로 피난온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는 피난나올때 잃어버린 가족중의 하나인 아들을 찾기위해
부산의 번화가에 아들이 좋아하는
칼국수집을 차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칼국수를 좋아하는 아들이
반드시 찾아올 것으로 믿었기때문이었다.
그리고 보통 칼국수 집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최고의 칼국수 집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보통 재료 조달조차 어려운 그 시절에
최고의 재료를 쓰고 최고의 정성을 들여
지극한 모성애를 발휘하여 유명한 칼국수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칼국수집은 금세 먼곳까지 소문이나서
그곳을 찾는 손님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어느날 헐벗고 굶주린 한 청년이
칼국수를 사먹으려고 그 집에 들어왔다.
그 어머니는 그 청년이 꼭 아들을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리를 하나 더 갖다 넣어주며 기다리게 하였다.
잠시 후 어머니는 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하나 갖다가
그 청년에게 주었다.
그 속에는 염색한 군복 한벌, 속내의 한벌, 양말 한켤레
그리고 운동화 한켤레가 들어있었다.
이것은 아들이 돌아오면 주려고 장만했던 것인데
아들을 생각하며 아들대신 그 청년에게 주었다.
콩 반쪽도 나누기가 아까웠던 각박한 세태에서
뜻밖의 횡재를 한 그 청년은
그 은혜를 소중히 간직하고 그집을 나왔다.
그로부터 5년후
그 청년은 열심히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법무관이 되어 부산에 부임한 즉시
그 칼국숫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1953년 초에 일어난 부산 대 화재로
그 부근이 모두 불타버리고 그 칼국수집은 자취조차없었다.
참 안타까운일이지만
그 청년은 그때 힘입었던 어머니의 사랑으로
멋진 법무관이 될수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수없는 동물이다.
가족들....특히 어머님의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가족을 항상 아끼고 사랑하고 , 용서하며 서로 존중하는 가족 관계를
유지할수있도록 노력해보기로 한다.
추석을 맞아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시길 .....
'일상의 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끔은 이런시간이 필요하다. (0) | 2016.09.18 |
---|---|
Defconn 풍선 (Feat. 장연주, 서민정) (0) | 2016.09.16 |
A-Ha Take On Me (0) | 2016.09.14 |
Apink(에이핑크) Crystal(크리스탈) (0) | 2016.09.12 |
900년의 세월을 지켜온 < 청주 압각수> (0) | 2016.09.11 |